음을 보할 것인가, 양을 지킬 것인가

음을 보할 것인가, 양을 지킬 것인가

우리가 한의원에 가면 음(진액)이 부족하다. 양기가 떨어진다와 같은 설명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음의 부족과 양기의 부족은 현재는 많이 정립이 되었지만, 원나라 말기와 명대의 시기(고려말- 조선중기)에는 논쟁이 많았던 주제였습니다.

주단계와 장경악이라는 한의학의 거두들을 중심으로 이 논쟁에 대해 설명드려보겠습니다.

두 사람은 다른 시대에 있습니다. 시대는 다르지만, 마치 이퇴계(李退溪)와 이율곡(李栗谷)의 이기이원론(理氣二元論)과 이기일원론(理氣一元論) 논의처럼, 한의학의 큰 흐름을 만들어낸 중요한 의가들이었습니다.

주단계(朱丹溪, 1281~1358) – 원말~명초

장경악(張景岳, 1563~1640) – 명대 중후기

주단계는 음이 항상 부족한 것이 병의 원인이다라고 보았고, 장경악은 양기가 남는 것이 아니라 양기를 잘 지키는 것이 중요함을 강조하였습니다. 표면적으로 보면 상반된 주장을 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좀 더 심층적으로 들어가보면 각 의가가 강조하는 포인트들에 차이가 있습니다. 두 분 모두 매우 중요한 인체생리와 병리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이 두 분의 이론들에 대해 소개해보겠습니다.

1-1 ‘양상유여 음상부족(陽常有餘 陰常不足)’

(양은 항상 남고, 음은 항상 부족하다)

한의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에게는 유명한 이론인데, 이는 주단계의《단계심법(丹溪心法)》《격치여론(格致餘論)》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주단계가 음이 부족하다고 본 것은 생리적인 ‘양기’ 자체가 나쁘다는 뜻이 아니라, 인간의 욕망(상화, 相火)과 결부된 병리적 현상을 경계한 것입니다. 상화(相火)가 쉽게 망동하고, 이 열이 진액(陰)을 말려버린다는 이론인 것이죠. 따라서 보중(기운을 돋우는 것)보다 ‘자음'(진액을 보충하는 것)이 건강의 핵심이라고 보았습니다.

(참고로 보중-보중익기탕에 대한 내용은 어제 올린 포스팅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1-2 vs 양비유여(陽非有餘)

(양기가 남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양기가 부족해서 모든 병이 생긴다)

장경악은 양기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주단계의 설을 정면으로 반박하였습니다. 이는

《경악전서·전충록(傳忠錄)》 중 〈양비유여론(陽非有餘論)〉에 나오는 내용인데, 양기가 남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양기가 부족해서 모든 병이 생긴다고 보았습니다.

장경악은 양기는 생명의 근원으로 보았으며, 하늘의 태양과 같은 것이라고 설명하였습니다.

한편 주단계가 이야기하는 양이 남아서 문제가 된다는 부분은 겉으로 뜨는 열(화)은 양기가 남아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양기가 뿌리를 잃고 떠오른 것이므로 오히려 양기를 보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이 부분에서 두 의가의 접근 방법에 차이가 있습니다.

후대에 많은 영향을 끼치는 명문학설(명문을 보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단전을 강화해야 한다는 수련 등도 명문학설과 관련이 있습니다.)

2. 정리 및 비교

두 학설은 병리와 생리를 바라보는 것에 차이가 있습니다. 주단계는 좀 더 병리적인 면을 집중해서 보았고, 장경악은 생리적인 면을 더 중심으로 보았습니다. 즉 인체를 바라보는 ‘프레임’의 차이입니다.

구분

주단계 (자음파)

장경악 (온보파)

핵심 명제

음상부족(陰常不足)

양비유여(陽非有餘)

인체관

욕망에 의해 진액이 마르기 쉽다.

양기가 부족해지면 생명력이 꺼진다.

치료 원칙

자음강화(음을 보하고 화를 내림)

온양보신(양기를 따뜻하게 보함)

비유

등잔에 기름(음)이 떨어지는 것을 경계

등불의 불씨(양)가 꺼지는 것을 경계

3. 마무리하며

주단계(朱丹溪)와 장경악(張景岳)의 이론은 표면적으로는 차이가 크게 보이지만, 실제로는 인체의 병리와 생리를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임상에서는 두 의가의 핵심적인 이론을 상황에 따라 함께 활용합니다.

갱년기 등에서 자주 활용되는 자음강화탕(滋陰降火湯)은 주단계의 자음강화(滋陰降火) 사상이 반영된 처방입니다. 한편 중장년의 만성피로에서 널리 활용되는 육미지황환(六味地黃丸)은 원방이 장경악 이전에 창안된 처방이지만, 장경악 이후 재해석되며 다양한 방향으로 활용되는 중요한 처방입니다.

두 분 모두 한의학의 역사에서 큰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의가들입니다.

저는 두 분의 이론 중 핵심적인 부분을 환자분의 상황에 따라 다양하게 적용하고 있습니다. 만성질환이나 중장년층의 질환은 자음(滋陰)과 온보(溫補)는 환자분의 상태에 따라 처방의 중심축을 달리 두게 됩니다.

현대인의 만성스트레스와 ‘번아웃(Burn-out)’은 주단계가 이야기한 음의 보강 관점에서 접근하며, 노년층의 정력저하와 양기가 떨어지는것(추위를 타는것, 체력의저하)는 장경악의 온보 관점을 적용합니다.

한편 급성 질환이나 소아·청년층의 경우에는 또 다른 관점이 필요하기도 합니다. 열의 증상이 뚜렷한 경우에는 위의 이론만으로는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 부분은 다음에 별도로 정리해 보겠습니다.

늘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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