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안 먹는 아이, 키보다 먼저 봐야 할 것이 있습니다
부모님들은 대개 진료실에 들어오자마자 ‘키’부터 물으십니다.
또래보다 작은지, 1년에 몇 cm나 컸는지, 성장판은 얼마나 열렸는지… 아이의 미래를 걱정하는 부모님의 당연한 마음입니다. 저 또한 고등학생 아이를 키우고 있기에, 부모님의 마음을 충분히 공감합니다.
하지만 저는 진료실에서 조금 더 긴 호흡으로 아이를 바라봅니다. 정작 먼저 해결해야 할 부분은 ‘키’라는 숫자보다, 아이가 잘 먹고 소화하며 잘 흡수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기 때문입니다.
성장은 결과이고, 비위(脾胃)는 그 바탕입니다. 아무리 좋은 영양제를 먹어도 엔진이 약한 차는 속도를 낼 수 없습니다. 잘 안 먹고, 자주 체하고, 감기를 달고 사는 아이들은 성장의 속도도 느려지기 쉽습니다. 제가 성장과 성조숙을 상담할 때 비위 기능과 면역력과 체력을 가장 먼저 살피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동의보감에서 말하는 성장의 근본
《동의보감》에는 성장의 본질에 대해 핵심적인 문구가 나옵니다.
人無根本, 水食爲命… 盖脾胃屬土, 主納水穀, 人之根本也.
(사람의 근본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음식이 생명의 근본이며,
비위는 토에 분류가 되며, 곡식을 받아들이기에 사람의 근본이 된다.)
이 문장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성장은 결국 ‘먹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단순히 먹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비위가 그것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잘 소화 흡수 할 수 있느냐가 관건입니다.
또한 동의보감에서는 비위가 허약하면 ‘면청기수(面靑肌瘦)’, 즉 얼굴빛이 좋지 않고 살이 여윈다고 하였습니다. 잘 안 먹고, 먹어도 더부룩함 때문에 식사량이 적고, 잔병치레가 잦아 결과적으로 체중과 키가 상대적으로 작은 아이들의 상황을 정확히 표현하고 있습니다.
(참고-凡人脾胃虛弱… 不能剋化… 噫氣呑酸, 面靑肌瘦“(사람이 비위가 허약하여… 제대로 소화시키지 못하면… 트림과 신물이 올라오고, 얼굴빛이 푸르며 살이 여윈다.)
성장과 성조숙 그리고 비위기능의 개선
요즘은 키는 큰데 예민한 아이, 혹은 마른 체격인데도 사춘기 변화가 빨라 걱정인 아이들이 많습니다. 이럴 때 무조건 성장에만 초점을 맞추면 본질을 놓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잘 먹고, 잘 자고, 잔병치레를 덜 하고, 소화 흡수력이 좋아진 아이가 결국 안정적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아이의 비위기능을 개선하는 대표처방
실제 임상에서 다음과 같은 처방들을 많이 활용합니다.
-
삼출건비탕(蔘朮健脾湯) 처방명 그대로 인삼과 백출을 베이스로, 비위를 튼튼하게(健脾) 합니다. 입이 짧아 식사 시간이 길어지는 아이, 몇 숟가락 안 먹고도 금방 배부르다는 아이에게 ‘먹는 힘(비위기능)’을 개선하는 목적으로 다용하는 처방입니다.
-
보중익기탕(補中益氣湯) 식욕이 없고 기운이 늘 처져 있으며, 감기를 달고 사는 아이들에게 자주 처방합니다. 동의보감에서도 위(胃)가 허할 때 쓰는 기본 처방으로 꼽히는데, 비위 허약과 기력 저하가 동시에 보일 때 많이 활용합니다.
-
육미지황탕(六味地黃湯) 기본적으로는 신장기능,지구력, 근골격계의 강화에 많이 활용하는 처방입니다만, 체력의 문제와 함께 비위기능이 약할때도 많이 활용합니다. 육미지황탕에 숙지황의 양을 조절하여 소화기능을 감안한다든지, 사인,신곡 등을 가하여 비위기능의 개선에 도움이 되게 첨가하기도합니다. 한편, 특히 성조숙이 우려될 때는 육미지황탕(六味地黃湯) 계열로 성장을 돕되, 성조숙에 유효한 약재를 넣어을 조절해주어야 할 때도 많이 있습니다.
글을 마무리하며.
아이 성장을 이야기할 때 키 숫자만 쫓다 보면 부모와 아이 모두 조급해지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성장의 근원은 비위기능의 개선과 많은 관련이 있습니다. 약한 부분을 보완하고 개선하면 결국 성장에 도움이 됩니다.
소중한 자녀분이 건강하게 잘 성장하기를 기원합니다.
덧붙임)
사실 제 딸아이도 어릴 땐 비위가 약해서 염려가 많았습니다. 키도 또래보다 작은 편이었구요. 하지만 비위 기능을 개선하는 데 집중하며 꾸준히 관리해주었고, 지금은 168cm까지 아주 건강하게 자랐습니다. 진료실에서 제가 성장의 바탕을 개선하는 것을 강조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Leave a Reply
Want to join the discussion?Feel free to contribu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