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의무병시절-생사를 넘나들다.

군시절 저는 강원도 인제 포병부대 의무병이었습니다.

의무병이 군생활이 힘들었다면 다들 믿지 않으시겠지만^^

나름 전방 야전부대라 상병달때까지는 대부분 많은 작업에 투입되고, 의무실에는 출입이 힘들었습니다. 야간에는 경계근무를 계속 서야 했구요.

교회에 가서 눈물 흘리며 초코파이도 많이 먹었었지요.

본부포대와 야전포대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야전포대는 중대별로 별도로 훈련을 매년 여려차례 나갑니다.

본부포대 소속 의무대도 의무지원 명목으로 훈련때마다 한명씩 참가합니다.

군대다녀오신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파견은 대체로 편합니다.

비상상황에만 대기하면 되고, 때되면 밥먹고, 자면 되니까요.(전문용어론 ‘할랑하다’라고 하죠^^)

알파포대 의무지원을 나갔던 98년이었습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파견의 여유로움을 즐기고 있던 순간, 갑자기 주위가 술렁였습니다.

“최재식 이병(가명)이 다쳤습니다.”

“바퀴 수리하다가 차에 깔렸습니다.”

순간 심상치않음을 느끼고, 바로 사고현장으로 달려갔습니다.

5/4톤 트럭 밑에서 수리작업하던 운전병이 의식을 잃어가고 있었습니다.

약간 경사진 곳에서 받침돌이 빠졌거나, 브레이크를 제대로 안잡았던것 같았습니다.

바퀴자국및 군복이 흐트러진 형태로 보아 차바퀴가 운전병의 골반(장골)을 지나간 걸로 추정되었습니다.

다리 거상 및 족부 굴신 검사 불능이었습니다.

골반 내부 및 대퇴골 골절이 의심되는 상황이었습니다.

내부 출혈이 일어나면 순간적으로 내부에서 1-2리터의 혈액이 출혈되고,

쇼크 및 생명의 위험을 느낄 수도 있는 경우였습니다.

일단 준비해갔던 수액을 투여했습니다. 일반적인 수액 맞는 속도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본대 군의관에게 연락을 하고, 근처 205병원에 응급준비요청을 했습니다.

의식 또한 혼미해져 가서 지속적으로 말을 걸어야 했습니다.

“최이병.. 여기가 어딘가.. 포대장님 계신데, 정신 잃으면 너 죽는다. 어디 이병 나부랭이가 군기빠져서 대답을 안하나..”

다행히 의식이 소실되진 않고, 정신이 혼미한 상태로 205병원으로 이송하였습니다.

그곳에선 대퇴골탈골 및 장골 골절로 진단, 일단 혈액 및 수액을 투여하고, 상급병원인 홍천 철정병원으로 이송하기로 하였습니다.

원통 205병원에서 철정병원까지는 대략 한시간정도 시간이 소요되었습니다. 시간이 정지된것처럼 긴 시간이었습니다. 호흡과 의식은 약해지고, 계속 최이병의 이름을 부르며 의식을 잃지 않도록 했습니다.

드디어 철정병원.

수혈받으면서 상태가 약간 호전되는 기미가 있었으나, 상태는 여전히 심각하였습니다.

철정병원에서는 우선 심장표면에 직접 관을 삽입하여 수혈관을 확보하고, 더 많은 양의 혈액을 주입하였습니다.

예과1년을 마치고 군에 갔기 때문에 심장에 직접 관을 삽입하는 광경은 저또한 처음 보았습니다. 그곳의 의사들도 매우 주의깊게 시술하였습니다. 탈골된 부위를 철정병원에서 처치하는것또한 어려운 상황이라, 헬기로 서울의 국군병원으로 이송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이 순간부터는 제가 할일이란 기도였습니다.

함께 갔던 군의관은 “어쩌면 상황이 아주 않좋을 수도 있다”라며 담담히 말씀하셨던게 기억납니다.

철정병원에서 인제 자대로 돌아오는 시간이 생생합니다.

저또한 하루동안의 긴박했던 순간에서 조금은 긴장이 풀어진 상황이라 몸이 힘들었습니다만.

돌아오는 길 내내 별을 바라보며, 계속 기도했던 시간.

겨울초입이라 차가운 밤공기를 호흡하며, 계속 생각에 잠겼습니다.

오늘 최선을 다했는가.

오늘 최선의 방법으로 환자를 대했는가.

내일 어떤 결과가 나올까. 결과에 관계없이 난 후회하지 않을 수 있을까.

부대에 복귀해서도 쉬 잠이 오지 않는 밤이었습니다.

ps 최이병은 다음날 다행히 회복하고, 2달뒤 의가사 제대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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