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에서의 기억-진짜의사,가짜의사

007년 1월 인도 바라나시 여행중의 일이었습니다.

바라나시는 인도인들의 영적인 고향이고, 힌두교의 상징적인 곳입니다.

모든 인도인들이 바라나시를 한번 가보고 싶어하고, 그곳에서 생의 마감을 하고 싶어하죠.

바라나시를 관통하는 강은 유명한 갠지스강입니다.

유명세만큼이나 멀리서 본 강은 아름다우나, 가까이서 보면 더럽기가 말로 설명하기 어려울 지경입니다.

하지만 인도인들은 이 강을 강가(Ganga)라 하여 이곳에서 몸을 씻고, 영혼을 정결히 하는 신성한 장소로 숭배하는 곳입니다.

용감한 외국인들도 목욕을 시도하는 사람이 있긴합니다.

저 또한 바라나시 가기 전에는 가서 꼭 갠지스강에서 목욕재계하고, 마음을 잡아봐야지 하는 결심을 했었으나^^ 막상 강을 본 순간 이건 객기다 생각하며 바로 포기했었지요.

또 하나의 특징이라면 소가 굉장히 많다는 것인데요.

힌두교가 소를 숭배하다 보니, 소고기를 먹지 않고, 소를 죽이지 않습니다.

소를 아끼는 힌두인들도 많으나, 제3자가 보기에는 방치하는 모습으로 보이더군요.

갠지스 강가에도 소가 굉장히 많습니다.

제가 여행을 하다보면, 자연스레 인사를 하게 되고,

제가 한의사임을 알게 되면, 대화의 주제가 “맥 한번 잡아주세요”라고 흐를 때가 많습니다.

그날 오전도 여행 중 만난 이들과 얘기 나누다가, “맥 한번 잡아달라”며 한 여행자와 대화를 하고 있었습니다.

바로 옆에 있던 여자분이 “저도 여쭤볼 게 있는데요..”

저야 의례히 또 체질상담이겠구나하고 “예..어디 불편하신가요?”

” 동물도 치료할 수 있나요?”

” 동물도 같은 원리로 약도 쓰고, 침도 쓸 수 있습니다만…”

“소가 아픈데 같이 가주시겠어요?”

흥미롭기도 했고, 여행 중의 재미있는 일이 되겠다 싶어 흔쾌히 따라갔습니다.

강가의 가트 마지막 부분에 아픈 소가 있었습니다.

소의 상태는 심각했습니다. 1개월 전에 소싸움이 벌어졌고, 넘어지면서 척추뼈가 골절되면서 옆으로 쓰러졌고, 2차적으로 큰 덩치를 못 움직이다 보니, 주먹만한 욕창이 발생하여, 감염과 고름이 매우 심한 상황이였습니다.

소 주위를 살펴보다가 천막이 쳐져 있는 것을 보고 의아해서 그녀에게 물었습니다.

그녀는 한달 전에 바라나시에 왔고, 우연히 이 소를 보고서, 소 주위에 천막을 치고, 소를 간호하느라 한달째 바라나시에 머물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주위에서 약을 모으고, 욕창을 소독하고, 고름을 닦아내는 일이었습니다.

머리에 방망이를 맞은 듯한 충격이었습니다.

제가 습관적으로 치료를 하고 오더를 내린다면, 며칠간 소독을 하고, 욕창을 치료하되, 호전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기에 치료를 중단하자고 얘기했을 것입니다.

이 여행자는 평범한 미술학원 선생님.

방학을 맞이하여 바쁜 시간 내어 인도에 왔다가, 소 한마리를 보고서 한달간 이곳에 머무르며 치료를 하고 있었습니다.

누가 의사인가.

면허를 가진 사람이 의사인가.

생명을 살리겠다는 의지를 가진 사람이 의사가 아닌가.

그날 저녁의 노을은 가슴을 오랫동안 적셔왔습니다. 지금도 내 가슴속에 생생하게 살아있으니까요.

어쩌면 저는 그 여행자와 쓰러져있던 소에게 늘 빚을 지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빚을 앞으로 오랫동안 갚아야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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