갱년기의 명방-자음강화탕(滋陰降火湯)
가을이 깊어갑니다.
여름의 무성했던 초목은 서서히 수분을 잃고, 나뭇잎은 하나둘 떨어집니다. 아침 저녁으로는 제법 서늘하지만, 한낮의 가을볕은 여전히 따갑습니다.
여성의 갱년기도 어쩌면 가을과 닮았습니다.
몸의 촉촉함은 줄어드는데, 인체의 상부 – 얼굴과 가슴에는 오히려 열이 오릅니다. 한의학에서는 이러한 변화를 음허(陰虛)와 허열(虛熱)의 관점에서 설명합니다.
오늘은 이러한 갱년기 증상에 활용하는 대표적인 처방 중 하나인 자음강화탕(滋陰降火湯)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여성에게 갱년기는 신체적으로나 심리적으로 많은 변화가 나타나는 시기입니다.
누구나 겪는 자연스러운 생리적 과정이지만, 그 변화의 정도는 사람마다 상당한 차이가 있습니다. 별다른 불편함 없이 지나가는 분들도 있지만, 수년 동안 여러 가지 증상으로 고생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1. 갱년기에 나타나는 몸의 변화
여성의 갱년기는 일반적으로 40대 중후반부터 시작되며, 폐경을 전후하여 여러 가지 신체적 변화가 나타납니다.(40대 초에 나타나는 경우도 꽤 있습니다.) 의학적으로 폐경은 마지막 월경 이후 12개월 동안 생리가 없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이 때 나타나는 대표적인 생리학적 변화는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Estrogen)의 감소입니다.
에스트로겐은 단순히 배란,생리에만 관여하는 호르몬이 아닙니다. 체온 조절, 피부와 점막의 건강, 뼈의 건강 등 여러 가지 신체적 기능에 관여합니다.
따라서 폐경 전후 호르몬의 변화는 다양한 증상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얼굴과 상체로 갑자기 열이 오르는 상열감, 안면홍조
식은땀과 야간의 땀
불면증과 수면의 질 저하
짜증, 불안감, 잦은 감정의 변화
질 점막의 건조감
관절통과 근육통
피로감
특히 안면홍조와 야간의 땀은 갱년기의 대표적인 혈관 운동 증상입니다. 에스트로겐의 변화가 뇌의 체온 조절 기능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다만 갱년기의 모든 증상이 여성호르몬 감소만으로 설명되는 것은 아닙니다. 나이, 수면, 스트레스, 기저질환, 생활습관 등 여러 요인이 함께 작용합니다.
2. 한의학에서 바라보는 갱년기 — 상열하한과 음허
한의학에서는 갱년기에 나타나는 변화를 상열하한(上熱下寒), 음허(陰虛), 음허화왕(陰虛火旺) 등의 개념으로 설명합니다.
1) 상열하한(上熱下寒)
상열하한은 글자 그대로 위쪽에는 열이 나타나고 아래쪽은 차가워지는 현상을 말합니다.
얼굴과 가슴에는 열이 오르는데, 정작 아랫배나 발은 차갑다고 호소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신체적 불균형은 가슴이 답답하거나 쉽게 짜증이 나고 화가 나는 증상과 함께 나타나기도 합니다.
2)음허(陰虛)
한의학에서 음(陰)은 몸을 촉촉하게 하고, 영양을 공급하며, 열감을 조절할 수 있는 기능이 있습니다.(염증에 따라 찬 성질의 약재를 활용할 수도 있고, 음을 보완하는 약재를 활용할 수도 있습니다. 대체로 갱년기는 음을 보완하는 방향입니다.)
3)음허화왕(陰虛火旺)
음이 부족해지면 상대적으로 열이 오르는 허열(虛熱)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쉽게 설명하면, 몸을 촉촉하게 유지하는 기능이 부족해지면서 상대적으로 열감과 건조함이 나타나는 것입니다.(비유를 하자면, 여름철 가뭄이 들면서 논이 갈라지면서 열감이 나는 것과 유사합니다. 이때는 물을 대어 주어야겠죠 / 한편 허열은 100미터 달리기를 한 이후 몸은 피로하고 갈증이 나는데, 몸에서 열감이 나는 것과 유사합니다. 이때 열감이 난다고 열을 내리는 약을 쓰면 안되겠지요)
입과 목이 마르거나, 피부가 건조하고 가렵거나, 잠을 잘 때 땀이 나는 증상 등은 음허와 허열의 관점에서 볼 수 있습니다.
물론 모든 갱년기 여성이 음허에 해당하는 것은 아닙니다. 기허, 혈허, 간울 등의 병리적 특성도 나타날 수 있습니다. 증상이 오래되었고 여러가지 증상이 나타난다면, 추가적인 검사와 진단이 필요합니다.
3. 자음강화탕(滋陰降火湯)은 어떤 처방일까요?
자음강화탕은 이름에 처방의 원리가 잘 나타나 있습니다.
滋陰(자음) — 부족한 음을 보충하고
降火(강화) — 상대적으로 왕성해진 화를 내려준다.
즉, 몸을 촉촉하게 하는 기능을 보강하면서 상대적으로 오르는 허열을 다스린다는 의미입니다.
자음강화탕은 명나라의 의서인 《만병회춘(萬病回春)》에 수록되어 있으며, 허준의 《동의보감(東醫寶鑑)》에도 소개되어 있습니다.
《동의보감》에 나와 있는 내용을 살펴보면,
治陰虛火動 睡中盜汗 午後發熱 咳嗽痰盛 咯唾血 飮食少思 肌肉消瘦 將成勞瘵
(해석: 음이 부족하여 허화가 동하고, 잠잘 때 땀이 나며, 오후에 열이 나고, 기침과 가래가 많거나 피가 섞여 나오며, 식욕이 떨어지고 몸이 여위어 허증이 심해지는 증상을 다스린다)
원래 이 처방은 음허로 인한 허열과 허로증상(소모성 증상) 등에 활용되었던 처방입니다. 이러한 전통적인 처방의 개념을 갱년기 여성 중에서도 열감이나 아간의 땀, 피부 가려움, 질건조감 등의 음허 증상에 활용할 수 있습니다.
자음강화탕에는 숙지황, 생지황, 맥문동, 당귀, 백작약, 지모, 황백 등의 약재로 구성됩니다.
숙지황은 보혈, 보신하며, 생지황은 보음하되 약간 차가운 성질로 열감을 조절하며, 맥문동은 보음합니다. 지모와 황백은 허열에 활용됩니다. 한편 당귀와 작약은 혈허의 대표처방 사물탕의 구성요소가 되기도 합니다.
실제 임상에서는 위에 소개된 약재에 여러가지 약재를 가감하여 갱년기의 다양한 증상에 대응하도록 처방을 구성합니다.
4. 갱년기 치료- 호르몬 요법과 한의학적 접근
현대의학에서는 갱년기증상에 대해 여성호르몬 치료(MHT, Menopausal Hormone Therapy)를 많이 활용합니다. 특히 안면홍조와 야간의 땀이 심한 경우 호르몬 치료가 유효한 경우가 많습니다. 다만 환자의 연령, 폐경 이후 경과 기간, 유방암 병력, 혈전증 등 여러 요소를 고려해야 합니다.
한의학에서는 호르몬 수치 자체보다는 환자의 증상과 신체의 전반적인 상태를 함께 살펴보는 변증(辨證)의 관점에서 접근합니다. 즉 인체의 밸런스의 회복, 순환의 관점에서 접근하는데, 갱년기의 큰 특징인 음허와 허열의 밸런스를 회복하는 관점으로 접근합니다.(물론 환자분에 따라 기울, 혈허, 간울 등을 고려하기도 합니다.) 다만 한의학적 음허를 에스트로겐 부족과 동일한 개념으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겹치는 부분도 있고, 다른 부분도 있습니다.
자음강화탕은 갱년기의 여러 패턴 중, 음허와 허열이 두드러지는 경우에 고려하는 대표적인 처방 중 하나입니다.(가장 많은 패턴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5. 갱년기 한약은 어떻게 복용하는 것이 좋을까요?
갱년기는 단기간에 끝나는 이슈가 아닙니다. 수년에 걸쳐 신체적 변화가 나타나는 시기인 만큼, 꾸준한 관리가 필요합니다.
저는 진료실에서 갱년기를 비교적 무난하게 지나가는 분들과 증상이 심한 분들의 치료 방향을 달리하고 있습니다.
증상이 심하지 않지만 피로감이나 수면장애, 열감 등이 반복되는 경우에는 일정 기간 한약을 복용하고 경과를 살펴보는 방법을 고려합니다. 상태에 따라 1년에 두 차례 정도, 한 번에 약 1개월씩 복용하는 계획을 세우기도 합니다.
반면 안면홍조, 만성적인 수면불량과, 야간의 땀, 우울증 등 불편함이 심하고 증상이 다양한 경우에는 좀 더 집중적인 치료와 정기적인 경과 관찰이 필요합니다. 경우에 따라 수개월 동안 치료를 진행하기도 하지만, 복용 기간은 환자의 증상과 체질, 건강 상태에 따라 다를 수 있습니다.
평소 가볍게 복용하며 관리할 만한 것이 없느냐고 질문하는 분들도 계십니다. 이런 경우 본원에서 갱년기에 도움이 되는 여러가지 약재로 구성한 환약을 권해드리기도 합니다.
일반적으로 탕약은 환자의 변증에 따라 약재의 종류와 용량을 세밀하게 조절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환약은 복용과 휴대가 편리하다는 장점이 있구요. 요약하자면 증상에 따라 탕약을 기본으로 활용하되, 평소에 갱년기에 도움이 되는 영양제 개념으로 환약을 활용해 볼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몸 상태에 맞는 처방을 적절하게 활용하는 것이라 하겠습니다.(장기간 복용할 경우에는 약재의 특성, 복용 중인 의약품, 간과 신장 기능 등을 함께 고려하는 것이 좋습니다.)
6. 갱년기- 폐경 후 2년이 중요합니다.
갱년기를 단순히 여성호르몬이 떨어지고 노화가 진행되는 시기로만 바라볼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신체적 변화를 이해하고, 앞으로 새롭게 관리하는 전환기로 받아들이면 좋겠습니다.
적절한 운동과 근력 유지, 충분한 수면, 균형 잡힌 식사, 스트레스 관리 역시 중요합니다. 여성의 건강은 단순히 나이만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잘 관리한 50대 여성의 건강 상태는, 관리하지 않은 젊은 여성보다 좋은 경우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갱년기를 가능한 한 편안하게 지나고, 그 이후에도 활력 있는 삶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겠지요.
제가 임상을 한지 20년이 되었네요. 그간 많은 여성환자분들을 보았습니다. 경험적으로 보면, 폐경 후 2년의 관리가 매우 중요합니다.
쉽게 설명드리면, 폐경 후 여성의 인체는 새로운 몸의 시스템을 만들어가게 되는데, 이 때 과로와 스트레스로 몸을 무리하게 되면 노화의 속도가 빨라지는 경우를 보곤 합니다. 실제로 이 시기에는 여성호르몬의 변화가 두드러지며, 골밀도가 비교적 빠르게 감소하기도 합니다.
갱년기 증상이 나타나고 불편한점이 있다면, 꼭 가까운 한의원에 내원하시어 몸에 맞는 처방과 치료를 받아보시길 권합니다.
갱년기를 지나고 계신 모든 여성분들이 건강하고 활력 있는 일상이 되길 기원합니다.
– 의인한의원 전재규 드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