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약 이야기
보약은 한의학이 오랫동안 중요하게 다루어 온 분야이며, 한약의 장점이 잘 드러나는 분야이기도 합니다.
보(補)의 개념과 순환의 개념은 현대의학에서도 여러 방식으로 다루고 있지만, 한의학에서는 특히 보(補)와 사(瀉), 기혈(氣血)의 순환과 음양(陰陽)의 균형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어떤 의미에서 보약과 치료약은 전혀 별개의 개념이 아닙니다.
한의학에서는 부족한 것은 보충하고, 지나친 것은 덜어내며, 한쪽으로 치우친 것은 균형을 잡아나가는 것을 치료의 중요한 원칙으로 삼습니다.
따라서 보약이라고 해서 무조건 좋은 약재를 더 많이 넣는 것은 아닙니다. 좋다고 하는 약재를 많이 넣어서 낫는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실제론 그렇진 않지요. 오히려 무엇을 더하고 무엇을 덜어낼 것인지 판단하는 과정이 처방의 핵심이라 하겠습니다.
1. 동의보감에서 이야기하는 보약
『동의보감』에서는 허로(虛勞), 즉 몸이 허약하고 기혈이 손상을 중요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陰陽俱虛謂氣血皆不足也 宜用雙和湯 八物湯 十全大補湯’
(음양이 모두 허한 것은 기혈이 모두 부족함을 의미하며, 쌍화탕·팔물탕·십전대보탕 등을 쓴다.)
『동의보감』 잡병편 허로(虛勞)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여기에 우리에게 친숙한 쌍화탕, 팔물탕, 십전대보탕이 등장합니다. 이 처방들은 유명하지만 처방의 구성은 단순하지 않습니다. 기혈의 부족과 음양의 상태를 함께 고려하는 대표적인 처방들입니다.
한편 한의학에서는 ‘허하면 보하고(補), 실하면 사한다(瀉)’는 원칙이 중요합니다.
여기에서 사(瀉)한다는 것은 단순히 몸속의 무언가를 배출한다는 뜻만은 아닙니다. 정체된 것을 소통시키고, 과도한 것을 덜어내는 등의 다양한 치료 개념을 포함합니다. 따라서 보약을 처방할 때에도 보하는 약재와 순환을 돕는 약재, 소통하는 약재, 배출하는 약재 등을 함께 구성할 수 있습니다.
2. 30~40대 남성의 보약
음주와 회식이 많고, 식습관이 불규칙한 30~40대 남성이라면 어떨까요?
사람에 따라 무조건 기운을 보충하는 처방이 적절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한의학적으로 습담(濕痰-잦은 음주, 비만과 관련이 있습니다.)이나 식적(食積-식체, 음주로 인한 불편감 등도 포괄) 등의 정체가 과도하다고 판단될 때에는 이를 제거하는 약재를 군약(君藥), 즉 처방의 주연으로 삼기도 합니다.
한편 과로와 수면 부족 등으로 나타나는 만성피로(기혈의 소모)도 함께 고려해야 합니다.
따라서 지나친 것은 덜어내고, 부족한 것은 보충하며, 기혈의 순환을 개선하는 방향으로 처방을 구성할 수 있습니다.
반면 육체적인 노동이나 운동으로 근골을 많이 사용하는 경우에는 간신(肝腎)을 보한다는 한의학적 개념도 활용합니다.
같은 40대 남성이라도 생활습관과 신체 상태에 따라 전혀 다른 보약을 처방하게 되는 것이지요.
3. 출산 후 여성의 보약(산후보약)
출산 후 여성의 경우에는 기본적으로 혈(血)의 개념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한의학에서는 여성의 월경과 임신, 출산 등을 설명할 때 혈허, 어혈 등 혈의 개념으로 많이 설명합니다.
『동의보감』에서도 산후의 기혈 부족을 다스리는 보허탕(補虛湯) 등의 처방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출산 후의 보약을 단순히 보혈(補血)의 개념으로만 접근하지는 않습니다. 임상에서 출산후는 보혈, 행혈, 어혈을 제거하는 의미의 생화탕과, 궁귀조혈음 등도 많이 활용합니다.
한편 출산과 육아 과정에서 몸을 많이 사용하고, 아이를 안거나 수유하면서 목과 어깨의 긴장, 요통 등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이런 경우에는 기혈을 보강하는 처방을 기본으로 하면서, 근육의 긴장을 풀어주고 순환을 도와주는 약재를 넣습니다. (출산과 육아는 육체적인 허로의 관점도 많이 봅니다)
물론 이러한 구분은 산모의 체질과 건강 상태에 따라 달라집니다.
4. 수험생의 보약(총명탕)
수험생의 경우에는 조금 다른 관점에서 접근합니다.
오랜 시간 공부하면서 정신적 피로가 쌓이고, 수면이 부족해지며, 식사 시간이 불규칙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의학에서는 이러한 상태를 살피면서 기혈을 보충하고, 필요에 따라 보음(補陰), 즉 진액을 보충하는 방법 처방을 고려합니다.(진이 빠진다는 표현도 하죠. 한의학적으로는 음허로 분류합니다.)
또한 오래 앉아서 공부하는 수험생들은 활동량이 부족하거나 소화기능이 떨어지는 경우도 많지요. 따라서 비위(脾胃)의 상태를 함께 살피는 것이 중요합니다.
한편 『동의보감』에는 복신(茯神), 원지(遠志), 석창포(石菖蒲)로 구성된 총명탕(聰明湯)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전통적으로 건망과 관련하여 활용해 온 처방이지요.
다만 모든 수험생에게 총명탕이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수면 부족이 심한 학생, 식욕이 떨어진 학생, 체력 저하가 두드러진 학생은 다른 처방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5. 소아의 보약
소아는 오장육부의 기능이 성장하고 발달하는 시기입니다. 한의학에서는 아이들의 생리적 특징을 고려하여 균형있는 성장, 비위기능의 개선, 체력의 강화 등에 중점을 둡니다.
저는 소아 보약을 처방할 때 대체로 세 가지 방향을 많이 고려합니다.
첫째, 간신(肝腎)의 기능-성장과 지구력의 발달(키가 작아요. 체력이 약해요. 잘 지쳐요)
성장과 지구력의 관점에서 간신의 부족이 있다고 판단된다면 육미지황탕 계열 등의 처방을 고려합니다.
둘째, 비위기능이 약한 아이들입니다.(입이 짧아요, 양이 적어요. 밥먹는데 시간이 오래 걸려요)
밥을 잘 먹지 않거나 소화기능이 약한 아이들에게는 삼출건비탕 계열 등 비위기능을 보하는 처방을 고려합니다.
셋째, 감기를 자주 앓고 잔병치레가 잦은 아이
이런 아이들은 호흡기 증상의 원인 중 기허(氣虛)가 두드러지는 경우 보중익기탕 계열 등의 처방을 고려할 수 있습니다.
아이들의 성장과 면역, 소화기능은 서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어느 한 가지로만 구분하기보다는 성장곡선과 식사, 수면, 병력, 알레르기, 유전성장치, 가족력 등을 종합적으로 살펴 처방하게 됩니다.
6. 노인의 보약
노인의 경우에는 전반적인 노화와 함께 여러 신체 기능의 변화가 나타납니다.
피로감, 식욕 저하, 수면 문제, 근골격계의 불편함 등 여러 증상을 복합적으로 호소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의학에서는 한열허실착잡이라는 용어가 있습니다. 한증과 열증, 허증과 실증이 여러가지가 섞여 있다. 다양한 연령층에서 나타나지만, 노년층에는 이러한 경우가 많습니다. 그 중에서도 허증이 베이스가 되는 경우가 많습다.
즉 기혈이 전반적으로 부족한 경우에는 이를 밸런스 있게 보강하는 처방을 기본으로 하고, 환자가 호소하는 개별 증상에 따라 약재를 가감하게 됩니다.
위에서도 말씀 드린것처럼 노년기라고 해서 모두 보하는 처방만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소화기능이나 순환 상태, 동반 질환과 복용 중인 약물 등을 함께 살펴야 하며, 때로는 정체를 소통해야 할 때, 실증을 치료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노인의 보약일수록 여러 요소들을 섬세하게 고려할 필요가 있습니다.
-글을 마무리하며
보약은 모두에게 똑같지 않습니다
이렇듯 남녀노소, 체질, 습관, 생활환경에 따라 보약은 다양한 각도에서 처방을 구성하게 됩니다.
같은 나이의 남성이라도 생활습관과 체질이 다르면 처방이 달라지고, 출산 후 여성이라도 체질과 증상에 따라 처방이 달라집니다.
아이들 역시 성장 상태와 식사, 수면, 평소 건강 상태에 따라 서로 다른 접근이 필요합니다.
누구에게나 동일한 약재, 동일한 처방을 사용하는 것이 아닌 것이지요.
오장육부의 균형의 회복, 이것이 한의학에서 보약을 바라보는 중요한 관점입니다.
이러한 개개인의 특성과 체질, 건강 상태에 따른 섬세한 처방 구성은 한약이 가진 중요한 장점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보약도 약인 만큼 무조건 오래 복용하는 것이 정답은 아닙니다. 건강 상태에 따라 적절하게 투약하면 되겠지요.
한약은 자연이 준 선물입니다. 환자분의 불편한 증상이 꼭 개선되길 바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의인한의원 전재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