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야 저 하늘에서는 건강히 살아라
두 아이의 아빠가 되어서인지 자녀 관련 기사에는 무심코 클릭을 하게 됩니다.
최근에는 부모가 자녀를 살해하는 기사들이 왜 이렇게 많은지..
실제 발생빈도가 높은 것일 수도 있겠고, 기사제목이 선정적이어야 클릭율을 높일 수 있는 온라인 매체의 특성 상, 그런 기사들이 넘쳐나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또한..가끔은 살해라고 할 지라도..
그 내막을 알고 보면 가해자 역시 피해자인 경우도 있는데
판사의 판결이 너무나 사랑이 없는 판결인 경우도 많아 역시 가슴 아프던 차였습니다.
그러던 중 자폐증을 앓고 있는 아들을 살해한 엄마를 무죄로 판결한 기사가 났더군요.
영국에서 발생한 일이었습니다. 인용을 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중략)…와인 윌리엄스 판사는 이본느가 글렌을 살해한 것은 사랑 때문이지 악의가 있어서 한 것은 아니라는 변호인의 주장을 받아들여 이본느가 가족에게 되돌아가야 한다고 판결했다. 윌리엄스는 이번 결정이 자신의 판사 생활 중 가장 힘든 결정이었다며 다만 이본느에 대해 감독을 강화할 것을 지시했다.
윌리엄스 판사는 이본느가 아들을 잃음으로써 이미 충분한 처벌을 받았다며 그녀가 아니면 글렌을 돌봐줄 사람이 없다며 살해를 생각한 것은 불합리한 일이지만 매일매일 최선을 다해 사랑과 열정으로 글렌을 돌봐온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말했다…(중략)”
경악할 사건, 선정적인 언론, 무감정의 판결이 하나의 셋트처럼 난무하는 최근에
사랑의 살인, 사랑의 판결이라는 것이..저 자신에게도 어떤 계기가 되는 것 같습니다.
실은..오늘 어려운 환자분을 대하면서 마음을 추스리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어르신이고 말기암 환자분이신데 그 분의 조급함, 짜증을 이제는 자녀들도 받아줄 수 없는 상황인지라 한의원에 오실 때마다 제게 많은 하소연을 하십니다. 다시 한번 마음을 추스리고 ‘잘해드리자..얼마나 힘드실까..’라고 다짐했습니다.
기사의 댓글 가운데 아래와 같은 글이 있었습니다. 제가 godblessu.co.kr을 도메인으로 삼은 배경과 비슷하여 많은 공감이 되었습니다. 아픈 분을 많이 봐야 하는 직업의 특성 상, 병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당사자의 마인드가 치유의 핵심임을 매번 깨닫습니다. 아픈 분의 좌절, 원망, 분노 등을 항상 이해하고 힘써 치료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나이 50이 넘어서 장애인이 되었습니다. 절망과 분노속에 나날을 보냈지만 그동안 건강한 몸으로 불성실하고 잘난 척하고 허황되게 살아온 제게 하늘의 벌이지 또 한번의 기회를 주시는 축복이라 생각케 되었습니다. 남들은 한번의 생을 허락하시지만 제겐 두번 허락하신 이 몸을 감사하고 열심히 살아가려 합니다. 장애는 먼 세월을 두고 생각하면 또 하나의 축복입니다. 저 어머니가 지금의 제 맘을 가졌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 고통은 알고도 남음이 있기에 눈물을 멈출수가 없습니다.
아이야 저 하늘에선 건강히 살아라”
God bless you.
의인 전재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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